장미의 이름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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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0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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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그것을 발견하여 명명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플라톤의 모방이론이나 시적 영감이론, 소크라테스식 대화, 아리스토텔레스도 상호텍스트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왔다. 이는 마치 그림자처럼 텍스트에 관한 논의가 있는 곳이면 그곳에 존재하여 왔던 것이다. 그것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앎’의 상태로 자각하게 만든 각성제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그 주요한 특징인 탈중심화, 탈정전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주요한 특징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주는 상호텍스트성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중 략>
당시의 상황을 크게 본다면 바로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틀에게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로, 신비주의에서 이성주의에로 사상의 흐름이 넘어가는 속에서의 갈등과 지상의 권력과 천상의 권력을 가진 두 파벌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겪게 되는 나와 자아와 타인과의 갈등이라 하겠다.
1314년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독일 제후들이 바이에른의 루드비히를 신성로마제국의 최고 통치자로 선출하고 때를 같이하여 라인의 영주와 쾰른의 대주교가 프리드리히를 선출했다. 2년 후 1316년 아비뇽에서 교황 요한 22세가 교황의 자리에 앉았다. 몇 년 후 1322년 루드비히가 프리드리히를 거세하자 황제가 둘일 때보다는 하나일 때를 더욱 두려워한 교황 요한이 루드비히를 파문하게 된다. 그해 5월 체제나 사람 미켈레의 주도 아래 열린 페루지아 소형제회 총회에서는 “완전한 삶의 본(本)인 그리스도와 그분이 사신 삶의 길을 따르면서 사도들은 재산이나 봉물을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청빈을 주장하고 나선다. 몇달 후 12월 교황 요한 22세가 사도헌장 <아드 콘디토렘 카노눔>을 반포하며 “페루지아 총회에서 언급한 ‘사용’은 곧 ‘소유’라고 주장한다. 또 이듬해 11월 12일 <쿰 인테르 논눌로스(Cum inter nonnullos)>를 제정하여 프란체스코수도회를 이단으로 몰게 된다. 얼마 후 1324년 5월 22일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황제가 <작센 하우젠 선언>을 반포하여 요한 22세를 이단으로 페루지아 총회를 지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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