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 고려시대 불교
1) 羅末麗初 선종의 유입과 확장
2) 교종과 선종의 관계
Ⅲ. 교선 통합의 노력
1) 大覺國師 의천
2) 普照國師 지눌
Ⅳ. 맺음말
본문내용
머리말
4세기 전후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넘어온 불교가 중국화 되어 한반도로 넘어오게 된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세력을 다투던 삼국시대였다. 당시 삼국은 불교를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이용하였다.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하기도 했으며, 중국에서 유학하는 승려들을 불러들여 국가통치에 기반이 되는 사상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신라의 통치 체제에서 불교적인 모습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팔관회나 화백회의는 불교교단의 운영방식을 채택해 운영하였고, 왕들의 이름과 왕자, 왕비들의 이름도 불교식으로 지었다.
이렇게 삼국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교의 사상을 체계화해 정치적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중앙집권을 기반으로 한 불교는 경전해석을 중심으로 이론을 강조하는 교종불교였다. 당시 지배세력이 원하는 불교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안정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불교의 대중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후에 원효나 의상이 불교를 대중화시키고자 실천적인 측면을 내세우면서 후대 선종의 뿌리가 되기도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실천의 제창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은 실천을 강조하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해 이론만 답습하는 교종의 논리를 중요하게 여겼고, 지배세력들 역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배세력의 타락과 더불어 불교논리는 점차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관념적으로 변하게 된다. 지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호족들은 타락한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배세력과는 다른 사상적 기반이 필요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 에서 선종의 유입과 선종이 유입된 후 교종과의 관계를 알아보고, 교선의 통합이 의천과 지눌에 의해서 각각 어떤 방식으로 통합이 시도되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Ⅰ. 고려시대 불교
1) 선종의 유입과 확장
신라하대에 이르면서 왕위계승을 놓고 다툼이 극심해졌다. 귀족 내부에서의 갈등과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은 더욱 가속화 되었고, 지배층들의 사치와 방탕이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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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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