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백제 장수 3인의 발자취에서 알아보는 장수의 자질 및 리더쉽, 그리고 영향력에 관한 연구

등록일 2003.05.10 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Ⅱ. 장수의 표상, 계백
2.1. 계백의 전기는 누가 만들어주었나
2.2. 계백의 출신
2.3. 전장에서의 계백
2.4. 황산벌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누가 영광된 삶이었나
2.5. 계백에 대한 평가
2.6. 계백의 무덤은 전하는가

Ⅲ. 흑치상지의 생애에 대한 변명
3.1. 낭만적 영웅
3.2. 생애의 곡절, 변절 문제
3.3. 당나라 장수가 되어 토번의 군대를 꺾다
3.4. 서경업의 모반을 진압하다
3.5. 이리떼와 같은 돌궐 군대를 꺾다
3.6. 천추의 한을 품고 세상을 건너가다
3.7. 그의 후손들

Ⅳ. 잊혀진 백제인 - 사타충의의 삶
4.1. 사타충의의 출신
4.2. 무장으로서 승승장구 전공을 세우다
4.3. 궁중 내분에 휘말려서 가다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백제사 연구는 사료의 부족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연구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자연히 다양한 견해의 제기를 유도하였다. 일례로 '백제' 국호의 기원을 비롯하여 위례성의 어원론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게대가 백제를 건국한 왕실의 계통에 관해서는 고구려 계통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부여로 가닥을 잡아가는 게 순리라고 본다. 백제 왕실의 시작인 국호의 기원 문제와 건국 집단의 계통에 관해서는 합일된 견해가 없었다. 이는 백제사 연구의 현주소를 잘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관성에 의해 지배되는 연구의 한계라는 느낌마저 준다. 가령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으로 표기하는 논자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백제사 인식의 수준이 아직도 <삼국사기>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와이요, 동명왕은 부여의 시조로서 양자가 별개임은 이미 극복되었기에 더욱 그러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처럼 백제에 관한 자료가 한계가 있고 다가가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에 본인은 더욱 백제에 대해 관심이 더욱 가지게 되었다. 특히 백제의 대표적인 장수들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삼국시대에 이러한 장수들도 있었음을 알리고 싶어서 이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 자료

著書
<백제 고대국가 연구> - 志社, 1995
<꿈이 담긴 한국 고대사 노트(상·하)> - 志社, 1996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도서출판 주류성, 1996

共著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 민음사, 1990
<백제의 역사> 충청남도·공주대학, 1995
<백제의 역사와 문화> 학연문화사, 1996
<백제문화의 일본전파> 《백제의 역사》, 1995

書評
<김주성의 '백제 고대국가 연구' 논평에 대한 답론> 《社會科學論評》 제15호, 1997

기타
<백제 위례문화의 사적 성격> 《동대신문》 1981. 5. 12
<백제의 신비를 푼다 - 새로 밝혀진 흑치상지의 생애> 《금호문화》 1993, 3월호
<백제는 정복국가인가?> 《금호문화》 1993, 5월호
<백제의 몰락과정과 그 부흥운동의 현장> 《문화와 나》 1997,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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