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김부식 - 〈중니봉부〉, 〈아계부〉
Ⅱ. 임춘 - ≪서하집≫
Ⅲ. 이규보 - ≪동국이상국집≫, 〈방선부〉, 〈조강부〉, 〈춘망부〉, 〈경설〉, 〈슬견설〉, 기타 작품들
Ⅳ. 최해 - 〈예산은자전〉
Ⅴ. 이곡 - 〈차마설〉
Ⅵ. 이색 - ≪목은집≫
Ⅶ. 비지류(금석문) - 용두사지철당간,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반야사원경왕사비, 이양윤 묘지명, 신륵사대장각기비
본문내용
<아계부 啞鷄賦>와 함께 ≪동문선≫ 권1에 실려 전한다. 김부식 이전의 시대에도 부를 지은 사람은 더러 있었을 것이나 현존하는 부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며 결구의 내용으로 미루어 작자 장년의 시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형식상 대구를 많이 썼으나 대체로 산문투의 송체(宋體)부에 가까우며 전고를 많이 인용하여 고풍의 장중한 격조를 표출하려고 노력하였다.
내용은 공자와 봉황새를 서로 비교하여 빼어난 덕과 중화(中和)의 성품, 그리고 의젓한 풍모가 서로 닮았다고 하며 공자의 덕의와 위의를 예찬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도 공자의 유풍을 못내 찬양하고 그를 좇는 영광을 가지고자 한다는 희망으로 결론을 맺었는데 이는 유가적 사유와 의리를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김부식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불교가 압도적인 사유 체계로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고려 사회에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공자 존숭의 사상을 문학 형식을 빌려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명료히 보여주고 있다.
<중 략>
원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반야사 터에 있던 것을 1959년에 현재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경내로 옮겨 보관하다 1988년에 일주문 동쪽에 비각을 짓고 보존하고 있는 원경왕사 낙진(元景王師 樂眞 : 문종 4, 1050?예종 14, 1119)의 비문이다. 김부식의 형인 고려 중기의 문신 김부일(金富佾)이 비문을 짓고 이원부(李元符)가 우세남체의 해서로 써서 돌아간 지 6년만인 1125년(인종 3)에 세웠다. 비가 많이 마모되어 중간에 내용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원경왕사는 고려 중기 화엄종의 고승으로 비 제목에 고려 화엄종의 제4대 왕사라 명기하고 있다. 왕사는 경덕국사의 제자로 동문인 대각국사에게서도 수학하였으며 대각국사를 따라 송(宋)에 다녀왔다. 국가의 천재지변을 막는 행사를 주관하고 교장(敎藏) 사업에도 참여한 후 왕사로 책봉되었다. 향년 70세 법랍 62세로 입적하여 개경의 귀법사에서 다비한 후 반야사에 안치하여 비를 세웠다. 음기에는 왕사의 문도를 열거하였는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자(親承敎訓者)로 수좌 1인과 삼중대사 2인 및 44인의 중대사, 가풍을 선양한 자(揚法化者)로 삼중대사와 중대사 수십인, 시봉하며 받든 자(奉待甁巾者)로 중대사 수십인, 운영을 도운 자(補翼事務者)로 중대사 수십 인의 네 부류로 구분하여 직명에 따라 문도를 구분하였음을 밝혔다. 문도를 성격에 따라 구분한 좋은 예로서 이 자료를 바탕으로 화엄종을 고찰한 논문이 있다.
참고 자료
이규보 저, 장덕순 엮음, 『슬견설』, 범우사, 1976
김진영, 『이규보 문학연구』, 집문당, 1984
손광성 外,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을유문화사, 2003
정진권, 『한국고전 수필선』, 범우사, 2005
최행귀,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 보리, 2006
최준하, 「이규보(李奎報)의 전(傳) 문학(文學) 고찰(考察)」, <인문학연구> 74권0호, 2008, p.22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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