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사마천의 사기
- 최초 등록일
- 2003.05.08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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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1.저자
1)사마천(司馬遷, 145?~86? B.C)
2)사마천의 일생
2.저작
1)『사기』의 형식
2)『사기』의 구성
3.관련사항
1)이전
2)현대
3)관련도서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마천은『사기』의 저자로 자는 자장(子長), 한나라 태사령(太史令)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태어난 사마천은 10세 때에 이미 『춘추좌전』과 『국어』 등의 고문을 줄줄 외우는 천재였다고 한다.
그는 20세가 되었을 때 부친 사마담의 분부에 따라 강희 지방을 두루 여행하면서 각지의 풍속 습관을 채록하고, 전국시대 제후들에 관한 각종 기록을 수집하다가 수도 장안으로 돌아와 낭중(郎中)의 벼슬을 맡아 보필하고 있었다.
그 후 사마담이 병들자 B.C 108년, 사마천은 부친의 직위를 물려받아 태사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유롭게 역사서와 석실속의 책들을 자유롭게 열람하면서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사마천이 무제의 명령으로 서천 남부를 순회하던 때 부친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사마천은 부친의 유업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역사 정리에 몰두했다.
그러나 B.C 91년에 이릉이 부하 5천명을 인솔하고 흉노와 싸우러 갔다가 서북의 요충지인 거연에서 선우의 대군과 맞딱뜨려 치열한 접전 끝에 크게 패하고 어쩔 수 없이 투항한 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은 한 무제를 분토케 했고, 조정 대신들은 앞을 다투어 이릉의 친족을 처단해야 한다는 의론으로 들끓고 있었다.
참고 자료
버튼 윗슨,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한길사
강용규, 「인물중국사」, 학민사
빙심・동내빈・전리군, 「그림으로 읽는 중국문화 오천년」,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