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국가정책에 대한 민간의 반응과 요구 염철론
- 최초 등록일
- 2013.11.17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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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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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염철론은 무제(武帝) 때부터 비롯된 소금 ·철 ·술 등의 전매 및 균수 ·평준 등 일련의 재정정책을 무제가 죽은 뒤에도 존속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전국에서 추천을 받고 참석한 자들 간에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참석자 중 현량(賢良) ·문학(文學) 약 60명은 유가사상을 근거로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고급관리인 승상(丞相) 어사대부(御史大夫) 상홍양(桑弘羊)과 그 부하 관리들은 법가사상을 내세워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여 이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 책은 염철 전매 등의 존속 여부에 관한 것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사상 등에 관해서도 논의를 펼치고 있다.
무제시대의 한제국은 끊임없이 외정을 반복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외정은 거액의 재정 지출을 피할 수 없었다.
<중 략>
변군을 경영하고 흉노를 정벌하는 것이 어떤 이익이 있는가에 관하여 어사는 변군의 설치로 새로운 산물이 중국에 수입되어 물산이 풍족해졌다고 하면서 또 지금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외적의 침략을 방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문학은 변군을 경영함으로써 중국이 피폐해졌으니 변국의 이익이 없고 백성들은 변군경영을 위한 과도한 세금과 요역 때문에 가난해 진다고 반박했다. 또 변군의 개척과 경영은 백성들을 궁핍하게 하니 어떠한 이익도 없으니 변군의 경영과 개척을 그만 둘 것을 요구했다. 문학은 흉노와 월을 정벌하지 않았을 때는 요역과 세금이 적어서 백성들은 풍족하였는데 그 후 군대가 여러 번 출동하고 호와 월을 지키고 사이와 통하면서 국가의 재정이 부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전마가 부족하여 암소와 암말들도 군대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육축들이 집에서 길러지지 않고 오곡이 들에 자랄 수 없어 백성들은 지개미와 쌀겨도 부족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고 자료
환관 저 / 김한규 · 이철호 역, 염철론, 소명출판, 2002
니시지마 사아도 저 / 최덕경 ,· 임대희 역, 중국의 역사 [진한사], 혜안, 2004
변인석 편역, 중국고대사회경제사, 한울아카데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