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사회경제적 지위
- 최초 등록일
- 2013.11.17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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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7세기 네덜란드 화단(베르메르를 중심으로)을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리포트
목차
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Ⅱ.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시장
Ⅲ. 베르메르의 생애와 작품세계
Ⅳ.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서양미술사에서 한 번도 두각을 나타낸 바 없던 네덜란드에서 17세기 들어 미술의 황금시대가 출현했다. 내용 면에서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전시대뿐만 아니라 동시대 다른 유럽미술과 명확하게 구별되었다. 이전의 네덜란드 미술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장르는 신화, 종교, 역사의 주제를 취급한 역사화였다. 역사화는 말하자면 문학을 그 속에 담은 그림이다. 역사화는 그리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이 신화, 종교, 역사에 관한 인문학적 교양을 지녀야 하므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가장 고상한 장르로 인식되었다. 17세기 프랑스의 미술가들은 회화에 일정한 위계를 부여했다. 역사화를 맨 위에 두고 그 다음에 초상화를 두었고 가장 바닥에는 현실의 주제를 다루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등 ‘고상하지 못한 미술’을 두었다. 1664년에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는 역사화를 전공하지 않는 화가는 교수가 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렇듯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들은 대체로 역사화가였는데, 유일하게 네덜란드에서는 풍경화를 비롯하여 현실의 주제를 다루는 화가가 다수였다. 미술사적으로 역사화가 전근대미술을 대표한다면 풍경화는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풍경화가의 주도성이 정립된 것으로 보아, 네덜란드를 근대미술이 최초로 발전한 나라로 간주하는 미술사학자들도 있다.
역사화 대신 풍경화 등이 주도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 미술시장의 특성, 무엇보다도 미술 수요자의 근대적 특성을 반영한다. 중간계급 수요자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선호했다. 감상을 위해 상당한 교양을 요구하는 역사화는 미술시장에서 대중적이지 않았다. 반면에 풍경화는 경제활동에 필요한 지리적 정보를 나타내고, 자신의 토지를 쉽게 확인해주고, 지도보다 더 생생하게 그것들을 입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오랜 독립전쟁 끝에 확보한 공화국의 국토에 큰 애착을 가졌다. 17세기 내내 국토를 범람이나 홍수로부터 지키고 면적을 늘리기 위한 국토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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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마순자(2000),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사회적 신분,『美術史學』, 한국미술사교육학회, Vol.14, 115-138.
이재희(2003),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시장,『사회경제평론』, 한국사회경제학회, Vol.- No.21, 237-287.
츠베탕 토도로프(2003),『일상 예찬 :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다시 보기』, 이은진(역), 서울 : 뿌리와이파리.
<베르메르>,《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