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다산정약용의 토지관
- 최초 등록일
- 2003.05.03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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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여전론
2)정전론
3)정전론의 영향 (동학농민군 집강소의 정전제 토지개혁안)
4)토지개혁사상의 비교를 통해본 다산의 토지소유관
본문내용
1)여전론
다산은 <전론>을 통하여 '여전제'라는 토지제도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전론 2에서 정전제, 균전제 및 한전제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이들 제도를 비판한 뒤 전론 3에서 그의 독특한 토지개혁안으로서의 여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전제에서 말하는 '閭'란 山谷과 천원의 지세를 기준으로 구역을 획정하여 경계를 삼고 그 경계선 안에 있는 약 30여 가구가 모여 구성되는 자치적인 공동농장 단위이다. 여 셋을 합쳐서 里라고 하며, 리 다섯을 합쳐 坊(방)이라 하고, 방 다섯을 합쳐서 읍(군현의 治所)이라 한다. '여'에는 여장을 두고 한 여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 여의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므로 사전이란 있을 수 없다. 여에서 생산된 수확량의 배당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여장은 매일 개개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해 두었다가 가을이 되면 5곡의 수확물을 모두 여장의 집(여중의 도당)에 가져온 다음. 그 곡물을 분배한다. 이 때 공가(국가)에 바치는 세를 먼저 제하고, 그 당음에는 여장의 봉급을 제하며, 그 나머지를 가지고 일역부에 의거하여 노동량에 따라 여민에게 분배한다. "
다산은 여전제를 실시함으로써 병제 또한 바로 잡히므로 병농일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