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3.05.02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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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차의 기원 및 전파
ㆍ차의 기원
ㆍ우리나라 차의 유래
2. 차의 종류와 특징
ㆍ녹차, 우롱차, 홍차
3. 차의 성분과 효능
4. 차의 이용
ㆍ기능성 식품 및 의약품, 생활용품
ㆍ차를 이용한 음식
ㆍ차의 활용
5. 맛있게 차 마시기
6. 세계의 차
본문내용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에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가 있었는데, 세상에 서는 가야의 수로왕비 허씨(허황옥( 許黃玉),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가 인도에서 가져온(48 년) 차씨를 심어서 된 것" 이라고 전하고,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통일신라의 제 42대 흥덕왕이 즉위하여 3년(828년) 겨울 12월에 사신을 당에 보내 조공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대렴(金大廉)이 차의 종자를 가져오니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이미 차는 선덕왕(632-646년)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성행하였다" 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외래유입설에 반해 우리차 자생설 또한 주장되고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불교의 성행과 더불어 차도 보편화가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다방(茶房 : 조정이 나 궁중의 여러 가지 행사에서 차를 준비하여 올리고 베푸는 등의 의례적인 찻일을 맡아 진행하는 벼슬이나 사람)이나 다군사(茶軍士: 다방에 소속되어 차의 일을 받드는 군사)가 있었고 고려 중엽에는 다소(茶所 : 다소란 차를 생산하여 나라에 바치는 행정구역) 19개소가 있었다는 역사적 문헌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으로 볼 때 그 전에 차가 전국적으로 보편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왕조에서 국가 공신들에게 주는 하사품에 차가 있었다는 역사 문헌도 발견되므로 그 당시 차는 일반 백성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중시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점차 자리를 잃어가자 불교와 같이 성행했던 차 문화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궁중이나 사대부들은 여전히 차를 즐겼으며 중국 사신들을 위한 다례( 茶禮)는 행해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다인(茶人)으로는 서산대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초의선사는 대흥사 뒷산 일지암(一枝庵)에 다신전을 짓고 우리나라 1천년 차역사에 중요한 유산인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였다.(1837년)
일제 시대에는 일인들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 그리고 한국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광주의 무등다원, 정읍의 소천다원, 보성에 보성다원 등이 조성된 것도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 해방 후 허백련이 무등다원을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삼애다원이라 하고 춘설차를 제조하였다. 일제하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일본식 다도가 교육되어지기도 했다.
참고 자료
차와 함께 떠나는 여행 / 연호택. 평단문화사
우리 차 세계의 차 바로 알고 마시기 / 최성희. 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