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서울도시하천의 모습과 바람직한 방향

등록일 2003.05.01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1.서론-하천의 발달과 역사
2.1.본론-서울시 도시 하천과 그 모습
3.1.결론-바람직한 하천의 모습
4.1.마무리-생명의 줄기인 하천

본문내용

1. 하천의 발달과 역사
인류는 처음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하천 및 지하수에서 얻었다. 점차 도시가 형성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자 우물로는 양적 부족과 수질적으로도 위험하게 되었다. 보다 깨끗한 하천수의 사용도 인구의 집중으로 오염되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위생수도를 만들어야만 했다. 한국의 경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으로 해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교차한다. 이에 따라 강우의 계절적인 편재가 매우 심하여 계절적인 물의 부족으로 인한 생활의 위협이 많았다. 그러나 음료수에 관하여는 화강암지대가 많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물을 대량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은 토기관으로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것인데, 이것으로써 신라인들의 물에 대한 높은 인식과 기술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상들의 우수한 기술을 전수받지 못하여 이후 조선 말기까지 수도라고 칭할 만한 시설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903년 12월 9일 미국인 골브란과 보스토워크가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수도 부설경영의 특허를 받았는데, 그들은 이 특허권을 1905년 8월에 영국인 회사인 조선수도회사(Korea Waterworks Company)에 양도하였으며, 이에 따라 1906년 8월 1일 최초로 뚝도정수장의 완속여과지가 착공되어 1908년 8월에 완공됨으로써 현대적인 수도시설로 서울 시민에게 급수를 개시하게 된 것이 근대적인 수도의 효시이다. 이어서 인천 ·평양 ·부산 ·대구 등 각 도시에도 점차적으로 수도시설이 보급되었다. 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는 수도시설을 위한 도시선정과 급수구역을 엄격히 제한하였으며, 주로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8·15광복까지 전국의 총 83개 도시에 계획급수 인구 200만, 1일 최대급수량이 27만 2000t에 이르렀다. 광복과 더불어 사회적인 변동으로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급격해진 반면 절대량이 부족한 기존 수도시설로는 감당하기 곤란하여 각 도시의 급수난을 해결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시민이 우물물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1947년 남한의 총인구 1780만 명 중 급수인구는 328만 명이며, 수도 시설용량은 1일 4만 t으로서 1인당 1일 급수량은 66ℓ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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