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기 건축] 가락국기 건축

등록일 2003.04.30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서문

본문
1.가락국기 (駕洛國記)에서 드러난 건축적 요소
1) 가락국 형성과정
2) 본문에서 드러난 건축적 요소
2.遼東城(요동성)의 育王塔(육왕탑)에서드러난 건축적 요소

결론

본문내용

서문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후기의 고승 일연이 편찬한 사서이며,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 고대 사적의 쌍벽으로 일컬어져 온다.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 된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선사 한 개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야사로서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보다 값진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지만, 그밖에 고조선․ 기자 및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고조선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고대의 신화, 전설, 지리, 민속, 사회, 사상, 신앙, 옛 어휘 등을 기록해놓았다. 다음 본문에서는 이러한 광범위한 것을 배제하고 건축적 요소로서 국한하여 “가락국기”와 “요동성의 육왕탑” 두 부분을 논하려 한다.

본문
1.가락국기 (駕洛國記)에서 드러난 건축적 요소
1) 가락국 형성과정
가락국은 낙동강 하류 김해 지방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작은 부락국가를 형성하여 가다가 좀더 커지면서 부족국가 형태로 변모되어 육가야가 되었다. 육가야는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진주, 대가야-고영, 성산가야-성주, 소가야-고성을 말하는데 그 중 금관가야의 세력이 가장 커서 다른 다섯 가야는 이 금관가야를 맹주로 삼았다. 금관가야는 수로가 세워 491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AD 53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여러 차례 항쟁은 계속되었다. 그 중 대가야는 이진아고왕으로 부터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500여년 동안 계속되다가 AD 562년(신라 진흥왕 23년)에 신라에 합병되었다.

참고 자료

삼국유사, 일연지음 / 이동환 옮김, 장락, 2001
한국고대사, 김종윤, 동신 1995
http://kr.encycl.yahoo.com/index.html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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