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미군정하 언론

등록일 2003.04.30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배경
2. 대립구도의 양극화
3. 그 외 군정하 언론의 발전

본문내용

배경
미군은 9월 7일에 인천에 상륙하였고 9월 8일 서울진주와 함께 9월 9일 진주군 사령관 하지 Hodge와 조선총독 아베(阿部信行)간에 항복문서 조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38도선 이남에 있어서의 미군정이 개시되었다. 미군정 당국은 즉시 포고령을 통해 정부 및 공공단체에 근무하는 일체의 종사자에게 계속 집무를 명령함으로써 일제 식민통치기구를 그들의 통치기구로 인정하는 한편 과도적인 치안담당기구로서 당시 국내 유일의 정치결집세력인 건국준비위원회와 3*1 운동 이후 한민족의 주권법통인 상해임시정부 모두를 부인하였다. 이 포고령은 요코하마 주둔 미육군 태평양 지구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 따라 정부수립시까지 미군이 시범적인 군정을 실시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인 동시에 한반도 38선 이남을 일본총독에 대신하여 미군정 장관이 통치하겠으니 이에 따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미군정에서의 우리 사회는 세계의 냉전과 발맞추어 북의 소련과 남의 미국이라는 대립구도, 좌․우의 대립구도와 함께 현재의 한국 사회의 체제를 구성하는 시효가 된다.

대립구도의 양극화
미군정의 언론죽이기와 북한의 기관지
미군정의 실시로 신문발행이 기존의 일제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뀜으로 인해 1945년말에만 40여종이 창간되었다. 대부분이 타블로이드판 2면 신문이었고 기존 일본의 시설을 접수하여 창간을 했으며 지방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46년에 미군정이 좌익세력을 탄압하기에 나섰고 이에 좌익언론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1946년 5월 29일에 ‘신문 기타 정기간행물 허가에 관한 건’으로 신문발간의 허가제도로의 복귀를 꾀한다. 이는 당시 언론의 성향이 좌익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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