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스라엘분쟁
- 최초 등록일
- 2003.04.30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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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열시미 하세용 ^^
목차
Ⅰ. 서론
1. 분쟁의 문명사적 배경
Ⅱ.본론
2.【제1차 중동전쟁 - 1948, '팔레스타인전쟁'(아랍측 명칭), '독립전쟁'(이스라엘측 명칭)】
3.【제2차 중동전쟁 - 1956, '수에즈전쟁'(아랍측 명칭), '시나이전쟁'(이스라엘측 명칭)】
4.【제3차 중동전쟁 - 1967, '6월전쟁'(아랍측 명칭), '6일전쟁'(이스라엘측 명칭)】
5.【제4차 중동전쟁 - 1973, '라마단전쟁, 10월전쟁'(아랍측 명칭), '욤킵푸르(속죄의 날) 전쟁'(이스라엘 명칭)】
Ⅲ.결론
6.【그 후의 정세】
본문내용
1. 분쟁의 문명사적 배경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명은 이집트왕 메르엔프타하의 전승비문에 메르엔프타하에게 정복된 한 종족의 이름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스라엘인(헤브라이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 땅(팔레스타인, 오늘날 이스라엘의 땅)에 들어온 것은 약 4,000년 전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에 종사하고 야훼(여호와)의 신앙을 확립하였다. 주위의 강대한 씨족에게 압박당하여 일부 부족은 이집트로 이주하였으나, 그 후 이집트의 생활에 견딜 수 없어 모세의 인도로 팔레스티나로 귀국하였다. 전술한 메르엔프타하가 이스라엘을 격파한 것은 이 때였을 것이다. BC 11세기 사울은 이집트의 지배가 쇠약하여진 틈을 이용하여 가나안 땅의 선주민 펠리시테인(필리시티아인)과 싸워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은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이 곳에 왕궁과 야훼의 성전을 세웠다. 그 뒤부터 다윗 왕가와 야훼의 성전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족적 자각의 중심이 되었다.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시대를 이룩하였으나 솔로몬왕이 죽은 뒤 왕국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정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대(유데아) 왕국으로 나누어졌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아시리아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유대 왕국도 BC 586년 신(新)바빌로니아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수도 예루살렘을 점령당하고 멸망하였다. 유대인은 사로잡혀 유명한 바빌론 포로생활에 들어갔다.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메르시아의 다리우스왕 때 유대인들은 해방, 귀국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성립시켰으나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BC 1세기에는 로마의 속주(屬州)로 편입되었다. 로마 지배하에 있기는 하였어도 반독립정권을 형성하고 로마 제국에 저항하였으나 티투스 황제 때 탄압당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져 오랫동안 표류하며 박해받는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