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사적인 관점에서본 자본축적과정

등록일 2003.04.30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영국과 일본의 자본축적과정

[2] 우리나라의 자본축적과정
1. 원시축적의 불가능성
2. 외자로 주도된 공업화
3. 강제저축에 의한 내자동원
4. 국내저축과 수출의 역할

[3]자본축적 모형이 종합비교

본문내용

1. 영국의 자본축적과정
1760년경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은 17세기 추부터 식민지개척을 중심으로 한 상업혁명이 있었고 17세기 후반부터 종획운동이 일어나 18세기 전반까지 농업혁명이 있었으며 그 다음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데, 이 산업혁명을 18세기 후반에는 교통혁명으로 주도되고 19세기 초부터 제조업이 이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공업화를 선도한 제조업이 이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공업화를 선도한 제조업은 18세기까지는 양모공업이었으며 19세기부터 비로소 면방공업이 주도적 비중을 점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에 필요한 자금공급은 무역과 농업이 담당하였으며 특히 농업부문의 원시축적은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 일본의 자본축적과정
일본의 공업화는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일본은 구미의 선발국보다는 늦었지만 일본의 주변에 있는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공업화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중간주자라고 할 만하다. 일본의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농업이 공급했다는 점은 영국이나 일본이나 다를바 없으나 일본의 경우는 농업잉여축적이 영국보다 훨씬 불충분하였다는 점과 영국에서는 농업혁명이 공업화에 선행하였는 데 대하여 일본의 경우에는 동시적으로 병행되었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와 같은 일본 농업의 특징은 일본이 영국보다는 낙후된 주자이기 때문에 농업부문에서 원시 축적이 충분히 성숙될 때까지 공업화를 기다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일본의 농업잉여축적은 영국에 비하여 훨씬 어려운 여건에 있었다느 점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의 농업잉여축적은 봉건적 소작제도와 영세적인 생계농업의 틀 안에서 주로 노동집약을 통한 토지생산성의 증대로 이룩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처럼 농지의 대단위화운동이나 양에 쫓겨나는 이농대열을 일본에서는 경험하지 못하였다. 영국의 종획운동은 소작제도를 붕괴시키고 그 대신 자본주의적 대단위 영농방식을 도입하는 농업구조의 혁명이었으며 이러한 구조변혁을 통하여 농업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업잉여를 창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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