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or 사학과]카노사의 굴욕

등록일 2003.04.28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발표하려고 제작한 발표문이구요.
책 여러개 읽고 정리한 겁니다.

목차

핵심
카노사의 굴욕
보름스 협약
카노사 굴욕사건 이후

본문내용

■ 카노사의 굴욕

중세 초기 국왕과 교황은 서로의 지배영역을 인정하면서 세속생활과 정신생활을 각기 나누어 다스렸기에 국왕과 로마 교황간에 협력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국왕들은 성직자를 지명하고 임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1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회의 개혁자들은 국왕의 성직자 임명권에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왕권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그레고리우스 7세(1073-1085)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성직자 임명권 문제를 둘러싸고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와 정면 충돌하게 되었다.그레고리우스 7세는 주교선출에 관해서 하인리히 4세에게 간섭하지 말도록 편지를 보내고, 주교와 수도원장은 왕으로부터 임명받지 말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그는 '교황권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여 교황에게 황제를 폐위시킬 권한이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하인리히 4세는 1076년 1월 보름스(Worms)에서 주교들을 불러모아 제국(帝國)의회를 소집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7세를 폐위시킨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이 소식을 접한 그레고리우스는 곧 하인리히 4세의 파문과 폐위를 선언하였다.
상황은 황제에게 불리하게 작용된다. 보름스 회의에서 황제를 지지하던 독일의 제후들과 성직자들이 황제에게 등을 돌리고 트리부르(Tribur)에 모여 파문이 취소되지 않으면 1077년 2월에 교황이 주최하는 아우구스부르크(Augusburg)회의에서 황제인 하인리히 4세를 추방하기로 결의하였다. 四面楚歌의 하인리히 4세는 1077년 교황을 찾아간다. 당시 교황은 새 황제의 선출을 주재하기 위해 독일로 가는 도중 北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마틸다 백작(女)의 카노사(canossa)성에 머물고 있었다. 하인리히 4세는 삼일동안을 꼬박 눈 속에 서서 사면을 애걸했다. 마침내 교황은 하인리히와 독일 제후들과의 분쟁은 교황의 재정(裁定)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비로소 파문을 취소해 주었다. 이것이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이다.

참고 자료

西洋 中世史- 브라이언 타이어니/시드니 페인터 공저. 집문당
西洋史總論-車河淳 著. 探求堂
중세의 빛과 그림자- 차용구 옮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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