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교육] 서당의 교육적의의와 접장제도
- 최초 등록일
- 2003.04.27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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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생각보다 서당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더군요.
저도 레포트 쓰는데 애좀 먹었습니다.
2주 정도 공들였는데.... 그래도 A+받아서 기분은 좋았죠*^^*
유용하게 사용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목차
서 두
1. 서당의 기원
본 문
2. 서당의 종류 및 설립 목적
3. 서당의 구성과 접장제도
4. 서당의 모습과 운영체계
5. 접장제도와 서양의 조교제도의 비교
결 론
6. 현재 교육제도로 바라본 접장제도의 의미
본문내용
서당은 우리나라 향촌사회에 근거를 둔 사족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면, 동, 이를 기본단위로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으로 학당(學堂)·사숙(私塾)·학방(學房) 이라고도 불려왔다. 서당교육의 역사적 기원을 어디에서부터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정설은 없으나 서당에 관한 기록을 한국 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삼국시대 고구려에 민간 교육기관인 경당이라는 부락단위의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당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사숙 또는 독서당(讀書堂)의 유형이다. 대개 문벌가나 유력가가 그들의 자제교육을 위하여 훈장을 초빙하여 교육 경비를 부담하는 형태이다. 이들 훈장은 퇴관 지식인이거나 불우한 낙방거자(落傍擧子)들로서 지식 정도나 경륜이 높은 경우도 있었다...............접장은 오늘날의 조교와 같은 성격을 지닌 일종의 보조교사이다. '접' 이란 원래 '무리' 라는 뜻을 지녔지만, 서당에서는 동급의 학도를 지칭한다. 교려시대의 사학(私學)인 도(徒)에서 접장제도가 발달하였다. 접장제도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서당에서 훈장 한 사람으로는 많은 학도를 일일이 가르칠 수 없을 경우에 학도 가운데서 나이와 지식이 많은 자를 뽑아 '접'의 장으로 세웠는데, 큰 서당에서는 접장의 수가 2,3명도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