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과 신돈
- 최초 등록일
- 2013.11.08
- 최종 저작일
- 2011.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왕이 하루는 웬 사람이 칼로 자기를 찌르는 것을 어떤 중 하나가 곁에 있다가 구원해 주어서 화를 면한 꿈을 꾸었다. 이튿날 태후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김원명이 신돈을 데리고 왕에게 현신했는데 그 모습이 꿈에 본 중과 흡사해서 왕은 크게 이상히 생각하고 데리고 이야기해 본즉 대단이 총명하고 지혜스러웠다. 매사를 명백하게 논증했고 제 말로 도통했다고 하면서 고담준론으로 궤변을 토하여 왕의 마음에 꼭 들었다.
<고려사> 권132 열전 45 반역 6 신돈
이 기록은 공민왕과 신돈의 만남을 매우 신비롭게 표현해두었는데 마치 공민왕이 꿈에서 본 사람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에 따라 발탁했다는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고려사>는 ‘신돈은 요승이었다’ 라는 평가가 내려질 만큼 신돈을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사를 훗날 조선에서 저술하였고, 조선을 세운 세력이 고려왕조의 타락성을 비판하여 조선왕조의 건국을 정당화하기위해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 다시 새롭게 바뀐 그에 대한 평가는 신돈은 왕의 측근에서 개혁을 도모한 인물이었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사책에도 신돈에 대해서는 전민변정도감과 관련된 개혁의 내용이 딱 한줄 나올 뿐이지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 그렇게 교과서에서 조차 제대로 된 언급이 없을 정도로 신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일까. 물론 전반적인 국사의 내용을 다뤄야하는 교과서에서 개개인을 중요하게 다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단지 요승이라고만 인식되어있던 그의 평가를 바꾸기 위해 저렇게 단 한 줄로 재해석해놓는 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공민왕과 신돈의 첫 만남은 공민왕 즉위 7년 이상한 꿈을 꾼 왕의 앞에 한 승려가 나타난다. 평소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왕은 종종 그를 불러 불교경전에 관련된 설법을 들었고 어지러웠던 나라의 상황 속에서 그와의 만남을 통해 안식을 얻었던 공민왕은 신돈을 매우 아끼고 귀하게 여겼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