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 최초 등록일
- 2013.11.07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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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크라테스는 우리들 귀에 매우 친숙하게 들리는 사상가이다.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웬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책을 한 권도 쓴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2500여 년 전의 소크라테스에 대해 지금의 여느 유명인사에 대해서보다도 많이 알 수 있다. 그가 사람들과 나눈 말들이 ‘대화(Dialogue)’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는 대부분 제자 플라톤이 정리하여 기록했다. 그렇지만 ‘대화’의 많은 부분은 플라톤이 현장에서 직접 들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어떤 ‘대화’는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던 것도 있다. 어떻게 플라톤은 자기가 직접 듣지도 못한 수십 년 전의 ‘대화’를 그토록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을까?
금방 지나가 버리는 멋진 장면들을 두고두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현대인들이나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다르지 않았다. 논쟁을 즐기던 아테네 사람들은 노예를 시켜 대화를 받아 적게 하거나 외우게 했다. 플라톤의 ‘대화’도 이런 식으로 기록되고 암기되어 전해지던 ‘대화’들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짐작된다.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대략 기원전 470년경부터 399년까지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석공 소프로니코스(Sophronikos)와 산파 파이나레테(Phainarete)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처 크산티페(Xanthippe)와 함께 세 아들들 두었다. 그는 포테이데이아(Poteideia, 432~429), 델리온(Delion, 424), 그리고 암피폴리스(Amphipolis, 422)의 전투에 참전했다. 기원전 406년에 그는 500명 평의회의 일원으로서, 아르기누스(Arginusai)해전의 승리가 있은 후 그 전쟁에 참전했던 지휘관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민회의 결정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폭풍 때문에 난파한 선원들을 구제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40세 이후에 교육자로서 청년들의 교화에 힘을 쓰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혼(psyche)’을 소중히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장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다.
참고 자료
교육철학 및 교육사의 이해 / 신차균·안경식·유재봉 공저 / 학지사
학위논문 교육철학 제48집 ‘소크라테스의 논박술(elenchos)과 플라톤의 방법론’ / 김석완(부산대학교)
흐름으로 보는 서양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 안광복 / 사계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