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춘추전국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통해본 역사 분열기의 고찰

등록일 2003.04.21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I. 서론

II. 몬론

1.정치적인 측면의 변화와 발전
2.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의 변화와 발전
(1)사회적 측면
(2)경제적 측면
3. 문화와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와 발전

III. 결론

본문내용

1. 정치적인 측면의 변화와 발전

기원전 1122년경 목야(牧野)의 전투에서 은(殷)의 대군을 격멸하고 건국된 주(周)나라는 여러 지 어려운 환경조건 속에서 개국의 기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봉건제도의 실시였다. 이 제도의 실시에 의해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에 주왕실의 자제, 일족, 동맹의 부족들을 제후로 임명하여 분봉, 배치하였는데 이때 분봉된 제후의 수효가 대게 100∼180여개 국이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봉건제는 은나라 유민의 포섭과 지배 그리고 주변 이적(夷狄)들에 대한 제어와 통제에는 성공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많은 모순과 약점이 있었으므로 시간이 지나며 붕괴하였다. 처음 분봉을 받은 제후는 주변의 유민들과 이적들의 침략과 약탈을 방지하고 안정시킬 수 있는 정치·군사적 세력기반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전략적 요충지에 성읍을 조성하여 정치·군사적 거점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국(國)의 조성이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만든 성읍에는 제후의 씨족을 파견하였는데 이들을 경대부(卿大夫)라했고 그들이 분봉되어 다스리던 지역을 채읍(采邑)이라 하였다.
이렇게 정치·군사적인 기반을 잡고 세력을 확장하던 제후국들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주왕실에 맞먹을 정도의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고 처음 분봉되었을 당시보다 혈연에 의한 단결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유(幽)왕때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도읍을 낙읍(洛邑)으로 옮기면서 일차적으로 주왕실이 통제력을 잃었으며, 정후(鄭侯)가 주환왕(周桓王)과 전투를 벌여 이김으로 주왕실은 분봉국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하게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각각의 제후들은 독립세력으로 거듭나 서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하게 되고 타국인이나 서민도 능력만 되면 등용하게 되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사인(士人)계층의 대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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