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리포트

등록일 2003.04.20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3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청계천 복원문제의 필요성
①고가·복개 구조물의 노후화
②도시 환경의 악화
③역사 문화 유적의 멸실
④주변지역의 낙후
2.청계천 복원의 효과
①환경적 측면에서의 이익
②경제적인 측면의 효과
3.개발 방향
4.과 제

Ⅲ. 결론

본문내용

심지어는 아이도 버리고 주워오는(?) 곳, 청계천은 어떤 곳이었을까. 청계천은 서울의 하수도였다. 조선 6백년간 도성의 백성들은 버리고 싶은 것들은 모두 퍼담아 청계천에 버렸다. 굳이 청계천에 버리지 않았어도 수채 구멍을 통한 물은 모이고 모여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가뭄이 되면 쌓인 쓰레기와 배설물의 냄새가 도성을 진동시키고 홍수가 나면 범람하여 쓰레기를 돌려주던 곳.
청계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때는 1910년대. 그 전에는 그냥 개천(開川)이었을 따름이다. 태어나면서 저주받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근원부터 탁한 샘물은 어디 있으랴. 청계천도 상류에는 분명이름만큼맑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박태원의소설 ‘천변풍경’이그려내는 빨래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청계천변의 세상은 두 종류로나뉘었다. 석축위의 세상과 아래의 세상. 석축위로는 가마를 탄 아씨가 지나가도 석축 아래 빨래터에는내일 아씨가 입을 저고리를 빨아야 하는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 저고리가 깨끗해지는 만큼 물은 탁해졌다. 석축 아래로는 쓰레기가 쌓였고 거지, 땅꾼들이 모여들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기보다 가리는 것이 더 쉬웠을까. 난마(亂麻)같은 하수관 위에 첩첩이 쌓이는 건물들을 정비해서 하수처리장을 만들고 청계천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하기에는 도시의 역량은 부족하기만 했으리라. 일제시대 때부터 시작된 복개공사는 1978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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