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후기가야연맹
- 최초 등록일
- 2003.04.17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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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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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자치 지향 안라국의 실패
백제 중심 체제에의 참여
함안 안라국의 멸망
고령 대가야국의 멸망
본문내용
제2차 사비회의 결렬 이후에도 고구려에 대항하여 신라와 백제가 외형적으로 결속하는 국제 정세의 큰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 가운데 백제는 왜 및 가야에 지속적으로 문물을 공급하고 인원을 파견함으로써, 그 대가로 가야 지역에 대한 기존의 세 가지 계책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결국 왜는 548년 1월에 병사를 보내줄 것을 약속했으며, 성왕의 세 가지 계책 가운데 하나가 왜와의 동조 아래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하여 안라국은 불안을 느꼈다. 백제 장군이 지휘하는 백제-왜 연합군이 안라 부근의 6성에 주둔하게 되면, 안라의 자주적 태세의 안정판 역할을 하는 안라왜신관에 백제의 압력이 강화되고, 이는 곧 안라국이 백제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라는 대항 체제를 다시 정비할 여유를 얻기 위하여 고구려에게 백제 정벌을 요청했다.
얼마 후 548년 정월에 고구려가 예병(濊兵) 6,000을 보내 백제의 독산성(獨山城), 즉 마진성(馬津城, 예산군 예산읍)을 공격하였고, 이 전쟁은 신라의 신속한 참전으로 인하여 고구려의 패배로 끝났는데, 고구려측 포로가 "안라국 및 왜신관이 백제의 처벌을 요청했기 때문에 이 전쟁이 발발했다"고 증언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