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등록일 2003.04.13 한글 (hwp) | 27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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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프랑스동맹이 성립된 결과, 전쟁이 시작되면 독일은 러시아·프랑스 양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1906년까지 독일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슐리펜은 독일의 동서 양면에서의 전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슐리펜계획>이다. 이 계획은 독일 육군전체의 7/8 병력을 개전과 동시에 서쪽의 프랑스로 진격시켜 6주 안에 프랑스군을 괴멸시킨 다음, 곧바로 러시아군과 맞부딪친다는 대담한 구상이었다.
프랑스를 굴복시킬 때까지 동부전선에서는 독일군 전체의 1/8 병력으로 러시아군의 서진을 막도록 되어 있었다. 더욱이 서부전선에 배치되는 독일군에 대해서는 프랑스방향을 향하여 우익, 즉 북쪽에 병력을 집중시켜 우선 가장 강력하게 작용할 우익으로 벨기에를 공격하고 북프랑스로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슐리펜은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필히 우익을 강화시켜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13년에 죽었다. 그러나 후임자인 육군참모총장 몰트케(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몰트케의 조카로 小몰트케라 불리움)는 우익쪽에만 병력을 집중시키는 슐리펜의 계획과는 달리 좌익 쪽으로 많은 병력을 빼돌렸다.
그 결과 남쪽은 강화되었으나 북쪽은 그만큼 약화되었다. 더욱이 러시아군의 동프로이센 진격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개전 직후 북프랑스로 공격해 들어가기 직전 서부전선의 2개군단을 동부전선으로 돌렸다.
14년 9월 6-12일의 마른전투에서 독일군의 파죽지세와도 같은 진격이 저지된 까닭은 가장 우익쪽에 있던 제1군과 제2군 사이에 50㎞나 되는 간격이 벌어져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룩셈부르크에 설치되어 있던 독일육군참모본부에서 몰트케의 대리자로서 전선에 파견되어 있던 헨취중령이 자신의 판단으로 제1군과 제2군의 철수를 건의하면서 그 때까지의 진격을 정지시킨 일에 대한 타당성의 여부가 자주 논의되었으나,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몰트케가 슐리펜계획에 2차례나 간섭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고 서부전선의 병력 자체를 약화시킨 데 있었다. 게다가 그 근본에는 독일의 국방예산을 해군증강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육군을 충실하게 육성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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