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 환경관의 고찰

등록일 2003.04.12 MS 워드 (doc)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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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의 자연관은 백두산을 우리 국토의 중심이며 뿌리로 보는 사고와, 그리고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보는 이원적(二元的) 사고 체계였다. 이것은 16세기 이래 전형적으로 보이는 국토와 산천인식 체계이며, 이러한 내용은 지리지, 지도 등에 보편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백두산을 우리 국토의 조종으로 보는 관점은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조선에 이르러서도 백두산에 대한 외경심은 여전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 백두산 자락의 함경도 일대이었고, 17세기에 여진족인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후 여진의 발원지인 백두산과 대지(大池, 지금의 천지) 일대에 제사를 지내는 등 신성화 작업이 이루어지며, 청과 조선 양국 사이에 국경문제 등이 거론되면서 백두산에 대한 신성화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또 조선 후기가 되면 이 일대의 인구 증가와 광공업의 발달로 인한 경제적 중요성의 증대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었다.
백두산 중심의 산천 체계는 자연적인 지세로 볼 때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산으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웠으며, 머리에는 항상 흰 눈을 덮고, 그 정상에 호수까지 있어 더욱 신비감을 주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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