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고전 문학] 헤이안 시대의 일기문학

등록일 2003.04.11 | 최종수정일 2014.12.02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 작 자 】
【 작품형성 】
【 주 제 】
【 의 의 】
2.
【 작 자 】
【 당시 사회상과 결혼생활 】
【 구 성 】
【 의 의 】
【 본 질 】
3.
【 내 용 】
【 특 색 】
4.
【 작 자 】
【 명 】
【 특 색 】
【 내 용 】

요미카타를 달아놓은 한자가 여기서는 뜨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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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토좌일기』의 작자는 紀貫之이다. 정관10연(868)전후에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그 집안은 무가집안이었지만 헤이안 시대에 들어 무공을 내세울 기회도 없어져 그 전통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등원씨의 세력에 압도되간다. 기관지는 『고금집』의 선자의 한사람이고, 또는 그 「かな서」의 집필자이고, 『고금집』 선진사업을 중심으로 화가의 궁정문학적 기능을 확립한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특히 제호조, 정희, 정장의 시대에 수많은 병풍가를 짓는 등 활약이 대단하였고 그 중에서도 천황의 칙명에 따른 것도 현저히 많아 제왕의 기관지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음을 알게해 준다. 또한 여러 귀족들의 비호를 받으며 수령층 가인들이 모여 하나의 살롱을 형성해 그 중심멤버로 그 속에서 마음껏 인간적 연대감과 미적 충실감을 맛봤을 것이다.
그런 기관지가 만년에 이르러 정장8년(930) 가을에 제호 천황으로부터 토좌수에 임명되어 그해 가을 서울을 떠나 임지로 향하게 된다. 당시 남해에 자주 출몰하던 해적과 국수로서의 정무의 고뇌도 있었겠지만, 5년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승평4, 5연(934,5)에 걸쳐 귀경한다. 당시 기관지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6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르러 있었으므로, 만년의 토좌수의 임무는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의 기관지에게 있어서의 큰 충격은 정장 8년 그의 토좌수 임명과 같은해 비호자로서 많은 신망과 도움을 주었던 제호천황과 이어 정방이 죽는 등 기관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서울에 돌아와 등원충평의 일가의 의뢰를 받아 병풍가를 짓는 등 변함없이 가인으로서의 활동은 하지만 그의 가슴속은 일찍이 맛본적 없는 인생의 공허함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는 귀경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가인 학자로써 큰 흔적을 남기지만 그다지 높은 관직에 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천경8연(945) 가을 80세 가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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