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민비와 흥선대원군

등록일 2003.04.07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역사의 라이벌인 흥선대원군과 민비에 대한 글입니다.
여러책들을 읽고 그 내용들과 흥선대원군과 민비에 대해 서로 입장차를 밝혔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조선후기에는 오랫동안 붕당정치가 계속 되었지만 영․정조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계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따. 그것은 탕평책의 실시에 따른 고른 인재등용의 탓도 있었고 실학사상이 정책에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동법과 균역법의 실시, 금속화폐의 유통등이 있게 되었다. 정조시대의 수원성 건설도 실학사상가들의 지혜가 결집된 국거작 공사였다. 다만 영조말․정조초년에 정조를 도와준 바있는 홍국영이 도승지로 있으면서 정권을 농단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전반적으로 왕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시기였다.
그러나 정조가 1800년 48세를 일기로 갑자기 죽고, 순조(1800~1834)가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즉위하자 외척세력이 발호하여 이른바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순조 초에는 안동김씨 김조순이 어린 순조의 후견인이 되었다가 왕실의 외척이 됨으로써 정권을 농단하였다.

대원군과 민비는 가족관계면에서 보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였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는 민비의 잘못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시아버지가 밉다 하더라도 외세에 의탁하여 이국에서 유폐생활을 하게 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대원군도 시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76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전일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일본의 낭인들을 불러 복수했다는 것도 가족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둘 사이에 있었던 고종의 역할이다. 어렸을 때야 어쩔수 없었다 하더라도 장성한 후에는 양자를 조정하여 화해시키고 우호관계로 돌이킬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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