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전기 신진사대부의 성장과 성리학의 발달
- 최초 등록일
- 2003.04.03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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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단히 발표할 수 있는 레포트입니다..
조선전기의 사회상과 성리학의 발달을 다룬 5장짜리 레포트입니다.
목차
사대부의 성장과 조선왕조의 성립
1. 신진사대부의 성장과 공민왕의 개혁정치
2.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3. 성리학의 수용과 이해
4. 사림파의 대두와 성리학의 발달
5. 붕당정치
6. 성리학적 향촌질서
본문내용
한 왕조의 교체는 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작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할 수도 있으나, 당시 사회를 살아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회의 변화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엄청난 변화를 수반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고려사회가 문벌귀족 중심에서 무인정변으로, 다시 조선 양반관료사회로 바뀌어가는 과정 또한 사회 전체에 파급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가 공부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조선사회의 탄생이 가져온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서원은 학문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 동시에 향촌 자치기구라 할 수 있는데 주로 그 지방의 양반자제들을 교육하였다. 이 중 사액서원은 국가로부터 서적 노비 토지 등을 지급받았고 면세 면역의 특권까지 누렸으므로 관학인 향교를 학문과 세력, 권위면에서 능가하였다.
이들 서원은 지방에서 중소 지주층의 지식인화를 촉진시키고 사림의 확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여러 차례의 사화에 의해 탄압을 받은 사림들의 활로를 개척하는 터전이 되었고, 사림들이 정치여론 집단을 형성하고 훗날 붕당정치의 저변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향약은 서원과 함께 향촌사회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도모하려는 사림파의 노력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훈구세력들의 지방 통제수단으로 이용되던 경재소, 유향소 등을 철폐하는 대신 향약이 향촌사회의 향권을 가짐으로써 향촌 중에서 훈구계의 비리를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향약은 여러 차례 그 시행이 중단 되었다가 결국 수령에 의해 자의적으로 시행이 맡겨지게 되어 '주현향약(州縣鄕約)'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주현향약은 수령의 주도하에 재지사족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는 것이었으므로 그 조직도 대체로 유향소나 서원을 중심으로 한 군현 단위의 상부조직이 위주여서 사족들이 군현 차원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성격이 짙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