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답사자료

등록일 2003.03.31 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양평 답사를 할때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답사집입니다.
양평답사뿐만 아니라 회암사지, 이항로, 정약용, 수종사에 관한 내용뿐만아니라, 조선초기의 역사까지 조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차

1. 회암사
(1) 회암사
(2) 회암사 내 문화재
회암사지 부도탑
무학대사 부도
무학대사비
회암사지 쌍사자석등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회암사지 맷돌
회암사지 당간지주
(3) 회암사 관련 기사
이성계 태상왕되어 머무르던 곳 '회암사'(조선일보, 1998년 03월 18일)
KBS 역사스페셜 `이성계의 또다른 왕궁...'(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06일)
회암사 구들(한국경제, 2000년 10월 12일)
문화지대/ 사극 열풍 속에 베일 벗는 檜巖寺(조선일보, 2002년 01월 23일)

2. 이항로 생가
(1) 이항로에 대하여..
(2) 이항로 생가
(3) 답사 Tip - 벽계구곡 드라이브
참고자료

3. 정약용 생가
(1) 정약용에 대하여..
- 어려서부터 싹튼 뛰어난 재능과 학문
(2) 정약용 생가

4. 수종사

본문내용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에서 돌아온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신증동국여지승람』「양주목불우조」에는 "1174년 금나라 사신이 왔는데, 춘천 길을 따라 인도하여(회암사)로 맞아들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때 보우(太古普愚, 1328∼1382)는 13세의 나이로 회암사 광지선사께 출가했다는 내력이 그의 비문에 적혀 있다. 아마도 그 뒤 지공대사가 공력을 다하여 재 창건했던 것을 창건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한편 우왕 2년(1376) 지공화상의 제자이며 고려말의 뛰어난 고승 나옹화상이 중건불사하게 된다. 이후 조선 성종 3년(1472)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되어 고려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하였던 국찰이었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각별한 관심으로 나옹의 제자인 무학대사를 회암 사에 머무르게 하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찰례토록 하였으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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