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동학농민전쟁
- 최초 등록일
- 2013.10.12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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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3.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전개
1) 재봉기
2) 논산대회
3)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토벌작전
4. 동학농민군의 항일전투
1) 이인전투
2) 우금치전투
3) 대둔산전투
5.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의의
6. 맺음말
본문내용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은 항일민족적(抗日民族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1894년 7월 22일 일본군의 경복궁(景福宮) 점령사건은 전국적인 반일 봉기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당시 전라·충청도를 중심으로 관(官) 협력 하에 또는 독자적으로 비교적 평온하게 폐정(弊政)을 개혁하던 농민군은 이 사건 직후 곧바로 각 지역별로 제 2차 기병을 조직했다. 동학 농민군은 조선에 불법 침입하고 국왕을 위협·내정간섭을 자행한 일본의 '보호국 정책'에 반발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일본군은 동학 농민군이 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지 않고, 조선에 주둔한 채 본격적인 침략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전봉준을 지도자로 한 동학 농민군은 1894년 10월 11일 재봉기하여 일본 침략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전봉준은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재봉기 동기에 대해 그가 체포된 후 재판관측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이 개화라고 일컬어 애초부터 일언반사(一言半辭)도 없이 민간에 전포(傳布)하고, 한편으로 격서(檄書)도 없이 솔병(率兵)하고 도성(都城)으로 들어와 야반(夜半)에 왕궁을 격파하여 주상(主上)을 경통케 하였다고 하기에, 초야의 사민(士民)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강개하지 않을 수 없어 의족(義族)을 규합하여 일본인과 접전(接戰)하게 되었다.
아래의 글에서는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고,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농민군이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전개한 항일전투와 패전으로 인한 해산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에는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의의를 밝혀 동학농민군이 1894년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동학 농민군이 전라도 일대를 휩쓸고 1894년 5월 31일 전주성을 점령하는 동안, 조선의 정세는 농민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갑신정변(甲申政變) 뒤에 공동 철병했던 청과 일본 두 나라가 이 봉기에 직접 개입하게 됨으로써 동학 농민군의 봉기는 단순히 국내 문제에서 끝날 수 없게 되었다. 동학 농민 봉기에 두 나라의 군대가 직접 개입하게 된 것은 민씨 정권에 의한 청병내원(淸兵來援)에서 발단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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