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공장
- 최초 등록일
- 2013.10.05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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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공자 ( B.C 551 ~ 479 )
1) 요약
2) 극기복례(克己復禮)와 정명(正名)에 나타난 보수주의자로서의 공자
3) 유교무류(有敎無類)에 나타난 혁신가로서의 공자
4) 이상을 추구했던 공자. ‘아니 될 줄 알면서도 애써 행하려는 자’
5) 논어
2. 맹자 (BC 372~289)
1) ‘인의’(仁義)를 주창하여 인간론과 정치론의 기초로 삼다,
2) 인간의 도덕적 각성과 수양을 요구하는 성선설
3) 맹자의 민본주의와 혁명사상 그리고 왕도(王道) 정치
본문내용
1.1.1. 짧은 정치적 영광과 긴 방랑, 그리고 애제자의 죽음공자는 기원전 551년 오늘날 중국의 산둥성 취푸(曲阜) 동남쪽에서 하급 귀족 무사인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를 일컫는 영어 콘휴셔스(Confucius)는 존칭인 공부자(孔夫子)의 라틴어식 표기이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상적인 혼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었다. 공자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季)씨 가문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주나라 관제와 예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예(禮) 전문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35살 때 노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나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하자 공자도 제나라로 떠났다가 2년 뒤 귀국했다.공자가 48살 때 계손씨의 가신 양호가 정권을 잡자 공자는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공자는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기원전 500년 노나라 정공과 제나라 경공이 회담할 때 공자가 의례를 맡아 노나라가 빼앗긴 땅을 돌려받음으로서 공자의 명성이 드높아졌다. 이 시기가 공자의 정치 생활에서 최전성기였다. 그러나 공자는 계씨를 비롯한 삼환 씨 세력을 타도하려다가 실패하고 한 무리의 제자들과 함께 고국을 떠났다.(기원전 497년) 이후 공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14년만인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 때 공자의 나이 68살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