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론 과제 조선시대 상설구빈기관들의 특징과 역할에 대해 서술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13.10.03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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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비황제도
2. 구황제도
3. 의료제도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장려하게 됨에 따라 구빈사업도 유교의 왕도주의에 입각하여 왕이 재해 및 빈민구제를 대단히 중요시하게 되었다. 조선초기의 빈민구제의 원칙은 빈민구제는 왕의 책임으로 하고, 구제의 신속을 중시하며, 일차적인 구빈행정 실시책임은 지방관이 지게하고, 중앙정부는 수시로 구제에 대한 교서를 내리며 필요한 관계법을 제정, 공포하고 지방 구빈행정을 지도 감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구제제도는 크게 비황제도, 구황제도, 의료제도의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론에서 세가지 구제제도를 통해 조선시대 상설구빈기관을 살펴보려 한다.
본론.
1. 비황제도
비황체도로서 상평창, 의창(환곤), 사창 등의 창제가 있었다. 상평창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곡물 이외에 포목을 더하여 곡물과 포목의 가격을 조절함으로써 백성의 의식생활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제도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구제제도는 아니지만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의 생활을 안정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구제제도로도 볼 수 있는 제도이다.
의창은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에서와 같이 재난을 대비하기 위하여 각종 곡물을 비축하여 재난시에 사용하는 제도로 종곡과 양곡의 조달이 어려운 빈민의 농업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곡물 대여제도로 두가지 대여 방식이 있었다. 첫째는 매년 춘공기에 종자와 식량이 떨어진 빈민에게 국가에서 곡식을 대여했다가 가을 추수기에 원본만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흉년이 들었을 때 의창곡을 모두 방출해 빈민을 진휼한 다음 풍년을 기다려 역시 원보s만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두가지 곡식 대여제도를 통해 원곡은 원곡대로 보존해 나가며 빈민은 빈민대로 구제하자는 것이 이제도의 원래 취지였다.
조선 건국 후 의창제도는 빈민구제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원곡 회수가 부진하며 빈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여하는 등 그 폐단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세종대에는 일시적으로 사창제가 실시되었으며 16세기에는 의창곡에 대한 이자가 첨가되어 점차 고리대로 변모함으로써 조선 후기 백성들에게 가장 큰 원성의 대상 되었다.
참고 자료
복지행정론, 최항순, 신원문화사, 2000
유교와 복지, 김철미, 백산서당,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