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지형도 - 기형도 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3.09.22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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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형도의 시를 `쓰는 행위`에 주목하여 분석한 글입니다. 원고지 73매 분량의 글입니다.
목차
1. 프롤로그
2. 세계, 변증이 불가능한
3.‘쓴다’의 지형도
4. 노인들의 세계
5. 죽음의 지형도
6. 에필로그
본문내용
기형도에게 있어 죽음은 자주 봄의 이미지와 겹쳐서 나타나는데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오후 4시의 희망」)와 같은 발화에서의 ‘꽃’과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을 거느리는가’(「나리 나리 개나리 」)와 같은 언술에서의 ‘개나리’가 그렇다. 봄이라는 생명과 활력의 시간을 기형도는 죽음의 세계로 인식한다. 노인들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에게 봄은 기적에 가깝고 시인은 ‘나는 기억을 믿지 않는다’(「오래된 서적」)와 같은 단호한 언술로 계절의 변증, 세계의 변증을 거부한다. 이러한 부정 의식 속에는 ‘나무는 목이 멘다. 갈증으로 병든 잎을 떨군다’(「잎․눈․바람 속에서」)와 ‘썩은 나무 등걸처럼 나는 쓰러진다’(「새벽이 오는 방법」)의 발화가 보여주는 견고한 자기 부정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자기 부정 의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자신이 지으려 한 집이 ‘누구의 집’인지도 ‘모르’겠고 ‘아예 짓지를 않았’다는 선언을 할 정도로 견고하다. [(‘기형도씨 무얼 했죠? 집을 지으려 했어. 누구의 집? 글쎄 그걸 모르겠어. 그래서 허물었어요? 아예 짓지를 않았지’(「雨中의 나이」)]
기형도의 미학적 성취를 우리는 그가 ‘쓴다’라는 행위를 통해 다다른 허무의 극점에서 찾아야한다. 기형도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는 어떠한 인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쓴다’는 행위는 그가 자신의 전신(全身)을 화해할 수 없는 세계에 온전히 투신하는 행위였고 이러한 투신을 통해 한국시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허무주의의 최전방을 구축했다. 기형도의 죽음은 분명히 한국시사의 커다란 손실이다. 그가 요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구축한 참혹하리만치 아름다운 세계의 전진을 이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여, 우리는 지금 출구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도화지 위에 서 있다.
- 「거리에서」부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