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조선시대 당쟁
- 최초 등록일
- 2003.01.21
- 최종 저작일
-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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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페이지 수는 적지만 정말 알찬 내용만...!!
책이랑 인터넷 상의 모든 자료를 집약,망라했다고 자부합니다.
참고로 과목점수는 A 맞았습니다.
목차
가. 당쟁의 기원
나. 당쟁의 발단
다. 잘못된 인식
라. 당쟁이 갖는 의미
마. 당쟁의 실제 모습
바. 당쟁은 선진적인 정당정치
▷ 참고 문헌 ◁
본문내용
당쟁은 명종 때 김효원(金孝元)이 이조 전랑(吏曺銓郞)에 뽑히면서 김효원 중심의 신진기예한 사림들의 의견을 대변하게 되었다. 이조 전랑이라는 것은 그 관등이 5품·6품에 해당하는 낮은 관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랑은 3사의 하나인 홍문관의 신진기예한 유신 중에서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며 전랑의 후임은 이조판서라도 간여치 못하고 전랑 자신이 추천하도록 되어있었다. 또한 전랑을 거치면 대개는 재상까지 쉽게 오를수 있는 요직이었으며 조정의 백관을 전형하여 쓰고 안 쓰는 것을 고선하는 권리를 잡은 지위였으므로 정치에 막중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명종비(明宗妃)의 동생인 심의겸(沈義謙)이 김효원이 이조 전랑에 뽑히는 것에 대해 반대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로는 심의겸이 이전 어떤 날 당시의 재상 윤원형(尹元衡)의 집에 가보니 김효원이 그 집 문객으로 있었다. 이는 김효원은 깨끗한 선비의 신분을 지키지 않고, 청년 선비로서 재상가의 문객 노릇을 하는 것은 비루한 일이라 이런 사람을 전형관을 시키면 벼슬이 공평하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들어 반대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평소 김효원은 심의겸을 매우 속으로 밉게 여겼다. 이로부터 얼마 뒤에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沈忠謙)이 전랑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매 이것을 본 김효원이 가만히 있을 까닭이 없었다. 신충겸은 사림(士林)에 아무 명망도 없는 사람이며 단지 궁중의 척권을 자세삼아 이런 벼슬에 뽑힘은 가당치 않다고 김효원이 또한 들고 일어섰다.
참고 자료
■ 참고 문헌 ■
[교과서] 한국사신론 - 이기백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 이덕일
한국사이야기 - 이이화 (당쟁과 정변의 소용돌이 편)
한국사 3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편)
신복룡 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 - 신복룡 (당쟁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