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민문화와 21C 서민문화
- 최초 등록일
- 2013.09.13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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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서민문화와 21C 서민문화
수업에서 '조선시대 서민문화와 21C 서민문화'를 주제로 소 논문 형식으로 쓴 레포트입니다. 조선시대 서민문화를 현재의 서민문화와 비교하며 고찰하여 쓴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의 서민과 서민문화의 발달
2. 조선후기 서민문화
3. 21C 서민
4. 서민문화
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서민과 서민문화의 발달
조선시대는 현대 사회와는 다르게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신분에 따라 하는 일이 서로 달랐다. 조선의 상류 계급으로 백성들을 지배 하며 유학을 공부하고 과거 시험을 통하여 관리가 된 후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참여하는 양반계급. 양반보다 낮은 신분으로 의학, 기술 등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인 중인계급. 백성들의 대부분을 이루는 사람들로 대게 농사를 하며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를 하는 상민. 그리고 양반집, 관청 등에서 종이나 노비로 갓바치나 백정 등 험한 일을 주로 하며 살던 천민. 태어날 때부터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신분은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부터 행동양식까지를 정해주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양란 이후 농촌이 황폐해지자 농민들은 농기구를 개발하고 각종 농사법을 발전시킴으로써, 농업생산량의 증대로 변화를 겪게된다. 이런 농업생산량의 증대는 광작의 유행과 부농을 출현시켰고 이런 일부 부농에 한해 불법적인 신분상승도 이루어졌다.
<중 략>
‘인디문화’의 작은 축을 이루며 형성되어 왔던 ‘그래피티 예술’은 ‘그래피티 문화’라고 칭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이런 ‘그래피티 문화’는 조선시대 후기에 유행하였던 민화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조선시대 예술적 감상용의 목적이 아닌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려는 민화와는 대조적으로 ‘그래피티 문화’는 서민들의 사회 불만을 직접적으로 그림을 통해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다르다.
Graffiti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Sgraffito", 이탈리아어 "Graffito"에서 출발된다. 즉,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의미로서 고대미술의 동굴 벽화를 의미하는 말로 시작한다. Graffiti는 도시에 살고 있는 소외 계층으로부터 출현된다. 기존의 보수성을 탈피하여 현장에서 호흡하고 마주치는 대면예술로의 Graffiti는 흑인들 중심의 ‘Hip-hop문화’ 혹은 ‘인디문화’ 에서 발전되었다. 흑인들만의‘Hip-hop문화’는 기성문화의 지루함에 반발하는 젊은 층의 기대와 부합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문화가 아닌 젊은 층의 공유물로 생활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참고 자료
강만길,『한국사』,한길사,1994
김귀달, 『문화사신론』, 裕豊出版社, 1986.
『ART INCULTURE』 아트인컬쳐
조윤경,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한국문화교류연구회,『해학과우리』, 시공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