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송][해운][해상운송 연혁][해상운송 책임][손해배상책임]해상운송(해운)의 연혁, 해상운송(해운)의 책임, 해상운송(해운)의 손해배상책임제도, 해상운송(해운)의 헤이그규칙
- 최초 등록일
- 2013.09.10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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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해상운송(해운)의 연혁
1. 아테네조약 이전의 해상여객운송에 대한 국제조약
2. 아테네조약의 성립과정
3. 책임원칙
Ⅲ. 해상운송(해운)의 책임
1. 책임원칙
2. 책임기간
3. 책임한도액
Ⅳ. 해상운송(해운)의 손해배상책임제도
1. 1957년 선주책임제한조약
2. 1976년 해사채권책임제한조약
3. 1996년 개정 해사채권책임제한조약
Ⅴ. 해상운송(해운)의 헤이그규칙
1. 책임원칙
1) 감항능력주의의무
2) 화물에 관한 주의의무
2. 면책사유
1) 항해과실
2) 화재
3) 해상 고유의 위험
4) 불가항력
5) 송화인의 과실
6) 해상구조
7) 화물 고유의 하자 또는 성질, 잠재적 하자, 통상의 부족손
8) 포장 및 화인(화인)의 불완전
3. 책임기간
4. 책임한도액
본문내용
전쟁이 해운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나포 활동과 호송선단 체제의 시행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교전국은 적국의 선박을 나포할 수 있는 권한을 자국의 상선과 해군에게 부여하였다. 1777-83년 사이에 영국에서만 7000개 이상의 나포 면허장(letter of marque)이 발부되었고, 다른 나라들도 사나포선의 활동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전쟁기에 영국의 해상무역을 가장 위협했던 것은 생 말로(St. Malo)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프랑스의 사나포선들이었다. 프랑스 외에도 1775년 이후 이따금 아메리카 식민지들, 홀란드(Holland), 스칸디나비아 제국, 스페인 등의 사나포선들도 영국의 상선을 공격하였다. 비정규적으로 벌어진 해상 무역 전쟁은 시기에 따라 그 강도에 차이가 있었다. 사나포선의 활동은 1694-1713년 사이에 절정에 달하였다가 18세기 중엽에 다소 약화된 다음 1793-1815년 사이에 프랑스혁명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기에 강화되었다.
미국 독립전쟁기에 생 말로에 등록된 사나포선 60척 중 48척이 영국 선박 201척을 나포하여 선박 1척당 4척을 나포하였고, 프랑스 전쟁기에는 등록 해적선 327척이 336척을 나포하여 척당 1척을 나포하였다. 생 말로 외에도 덩케르크(Dunkirk), 낭뜨(Nantes), 포르 루이(Port Louis), 보르도(Bordeaux) 등에도 사나포선이 있었으나, 이들 항구의 나포 활동은 18세기 말에는 이미 크게 위축되어 영국의 해상 무역에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영국 선박이 프랑스와 적국의 해군과 사나포선에게 나포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영국은 자국의 해군 및 사나포선의 활동으로부터 더 큰 이익을 얻었다. 1776년에서 1783년 사이에 영국은 총 3386척을 나포하였고, 나포되었던 영국 선박 495척을 다시 나포하였으며, 영국 선박 2384척이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프랑스 전쟁 중에도 프랑스와 그 동맹국에게 상실한 선박 보다 영국이 나포한 선박이 더 많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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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흥 / 해상운송법, 박영사, 1992
정영석 / 국제해상운송법, 범한서적, 2008
한낙현 / 국제해상운송과 해상화물보험, 두남, 2011
한낙현, 박영배 / 해상운송과 화물보험, 두남, 2007
한낙현, 박영배 / 해상운송과 해상적하보험, 두남,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