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등록일 2003.01.19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객관적 레포트

목차

■ 장영실
■ 세종대의 과학기술개발은 고도의 정치행위
■ 참고문헌

본문내용

세계사는 바로 과학기술의 싸움판이었다고 할 때 과학기술에 뒤졌던 조선 왕조가 세계 속의 후진국으로 떨어진 것은 필연이었다. 한국 근대사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세종 이후의 과학기술이 왜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생각지 않으면 안된다. 장영실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 보면, 세종대의 과학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던 것을 누구라도 금방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도 발전했던 세종대의 과학과 기술은 1442년(세종 24년)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장영실은 그해 4월 장(杖) 80대를 맞고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고, 그와 함께 과학기술의 황금시대는 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형벌을 받고 역사 기록에서 아주 사라진 것은 그가 만들었다는 임금의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유였다. 그때 세종은 그 가마를 탄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장영실이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았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그의 행적에 대해 그후의 『조선왕조실록』 어느 곳에서도 더 찾아볼 수가 없다. 장영실은 역사에서 추방당하여 20세기까지 깊은 잠 속에 빠졌던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장영실이란 이름은 한국인에게 그리 잘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다. 아니, 해방 후 얼마 동안까지도 그의 이름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조금씩 시작되고, 해방 후 가속화되었던 아주 근래의 사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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