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정조의 화성행차

등록일 2003.01.18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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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회갑잔치가 아니라 회갑잔치라는 이름아래 정조의 정치사상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25세의 청년으로 왕위에 오른 22대 임금 정조(재위 1776-1800)는 통치기간은 비록 24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업적은 굵고 화려했다. 정조의 시대는 왕조문화의 절정기인 동시에 유교적 근대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정조의 업적이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통치 자체가 화려하기도 하지만, 그 통치를 적나라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에도 원인이 있다. 조선왕조 전체가 기록문화라고 하지만, 정조시대의 기록문화는 가히 모범적이다. 특히 화성(華城) 건설과 화성행차에 관한 자료는 기록문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장엄하다. 바로 그 점이 정조와 다른 임금을 차별되는 이유중의 하나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신감은 도덕성에서 오는 것이고, 그 도덕성은 백성과 나라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정조는 당쟁에서 승리하여 오랫동안 정치적·문화적 특권을 누려온 오만한 서울 양반을 누르고, 때묻지 않고 개혁적인 지방선비를 정치권에 등용함으로써 정치탕평을 가져오려 했다. 정조가 추구하는 정치개혁은 강력한 지도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환경에서 왕권 강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조는 장용영(壯勇營)이라는 친위부대를 육성하여 왕권의 군사적 기반을 구축했다. 뒤주에 갇혀 불명예스럽게 죽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는 것도 정조에게는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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