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국사수행평가-송시열
- 최초 등록일
- 2013.08.24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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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칭별칭 자 영보(英甫), 호 우암(尤庵), 우재(尤齋), 시호 문정(文正)
조선시대 문신으로 관직은 이조판서, 좌의정을 했다.
조선을 ‘송시열의 나라‘라고 까지 연상하게 만든 송시열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조광조와 더불어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었던 그는 우리나라 학자 중 ‘자(子)’자를 붙인 유일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방대 한 문집인 일명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남겼다.
그의 정치사상은 조선 중기의 사림정치 이념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정치의 원리를 ≪대학≫에서 구했는데 그것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표현된다. 즉, 남을 다스리는 일은 자신의 수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그는 통치자의 도덕성 확립을 강조하였다.
특히 임금은 만화(萬化 : 만물의 조화나 변화, 특히 인간 사회의 모든 변화)의 근본이므로 군덕의 함양이 정치의 제일 과제라고 믿어 맹자의 “한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바르게 된다.(一正君而國正)”라는 주장을 정치 활동의 지표로 삼았다. 따라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왕에게 수신·제가·면학을 강조하고 사심과 사은(私恩)을 억제할 것을 권하였다.
송시열은 매우 보수적인 정통 성리학자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시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또 실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현실적 문제를 개혁적으로 대처하고자 사회문제와 사회경제 재건을 위해 많은 대책을 내놓았고 먼저 부세제도와 재정제도를 부분적으로 개선하였다.
먼저 사회신분 문제에 있어서 양반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특권은 제한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이에 우선 양민에게만 지워졌던 군역의 부담을 줄이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는 호포제(戶布制)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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