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사관에 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3.08.19
- 최종 저작일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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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선교사관
2. 민족교회사관
3. 민중교회 사관'
본문내용
1. 선교사관
'선교사관'은 한국 교회사학의 선구자인 백낙준의 『한국개신교회사』(1832-1910)에서 출발된다. 그는 기독교 역사를 '복음 선포의 역사'로 규정함으로 일반사와 교회사의 경계와 교회사 연구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백낙준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 교회사를 연구한 학자로 김양선과 이호운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관'은 '민족교회사관'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렸다. 심지어 1980년대 들어서 '반미', '반외세'라는 급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한국 교회사에서 선교사들의 활동은 비판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선교사관'은 '반민족적 사관'으로까지 매도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용도 폐기' 상황으로까지 몰렸던 '선교사관'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 략>
선교사들과 그들에게 교육받은 청교도적 보수 전통주의 신학자들에 의한 '신학의 바벨론 포로기'와 이런 보수주의 신학에 "이의 제기"를 함으로 비롯된 보수·진보 간 신학 갈등과 논쟁이 한국 신학사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 것이다. 그 분깃점에 보수신학을 대변한 박형룡과 진보 신학을 대변한 김재준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 포로기'의 기점은 "한국 신학사에 김재준이 등장한 ... 1933년"이 된다. 그러나 이같은 시기 구분이 갖고 있는 한계도 있다. 우선 한국 신학사를 선교사 신학과 한국인 신학으로 2분하여 선교사 신학을 '지배자 신학'으로, 한국인의 신학을 '해방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2분법적 구조 인식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다. 이는 '민중 사관' 내지 '민중 신학'이 같고 있는 민중에 대한 정치 구조적 개념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역사 해석은 사관주의가 갖고 있는 연역적 오류를 범할 위험이 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