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개혁신앙의 형성
- 최초 등록일
- 2013.07.11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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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알미니우스파의 조항들 (Articuli Arminiani) 혹은 항의서 (Remonstrantia).
2. 교리의 첫째 머리: Primum Doctrinae Caput, De Divina Praedestinatione
3. 제 2 교리의 머리: Secundum Doctrinae Caput, De Morte Christi, et Hominum Per Eam
Redemptione
4. 교리의 제 3과 4 머리: 사람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돌이킴과 그 방식에 관하여
5. 교리의 다섯 번째 머리: DE Perseverantia Sanctorum
본문내용
우리는 네덜란드(Netherlands)와 벨기에와 룩셈부르그는 ‘베네룩스 3국’(國家群)이라 부른다.
네델란드는 영어로 ‘Low Countries’로 ‘저지대’ 라는 의미이다. 이 지역은 16세기에 네덜란드가 맨 처음 독립국이 되기 전까지는 역사상 하나의 단위로서 기능했고 그 뒤에도 合從連橫(합종연횡)을 거듭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 나라가 뚜렷한 문화적, 정치적 개성을 지닌 국가로 서 있으나 역사적 공통분모는 크다.
저지대 국가들은 바이킹의 잦은 공격으로 도성을 건축하여 방어를 하였고, 유럽의 관문으로서 상,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2세기에 들어서자 상인들과 기술자들이 영주들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상인들과 기술자들은 영주의 정복사업을 지원하는 대신에 영주로부터 여러 가지의 보호 조치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이러한 계약에 의해서 국제법의 규범이 되기도 하였다.
암스테르담이 유럽의 항구가 된 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4세기말부터 저지대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서서히 ‘부르고뉴 공국(公國)’에 의해 병합되어 나간다.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의 중심부에 있던 공국으로, 지금의 독일-프랑스 접경지대 알사스 로렌을점령하고 저지대로 진출하여 15세기에는 이 지역의 지배자가 된다. 부르고뉴 공국은 이 지역의 도시국가들을 강력하게 통치하면서 자율성을 많이 규제하였으나 정치적 안정을 부여함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 저지대의 경제활동은 맥주 생산, 그림, 보석, 도자기제작과 무역 등이었다. 저지대 사람들의 근면성과 오랜 상업의 전통이 좋은 지도자와 어울려15세기의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나중에 프랑스에 합병된다.
1506년 저지대의 통치권은 부르고뉴 공국에서 스페인 왕 칼 5세에게 넘어갔다. 칼 5세는 합스부르그 왕가(王家) 사람인데 그는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했다. 당시 유럽의 나라들은 왕들의 사유물처럼 취급되었다. 부르고뉴의 필립공(Phillip the Fair)은 스페인의 조안나 공주와 결혼했다. 필립은 아들이 태어나자 그에게 저지대 지역을 선물로 주었다. 이 아들이 16세기 유럽의 패자(覇者)가 되는 칼 5세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