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최현배

등록일 2003.01.02 | 최종수정일 2014.01.26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좋은하루 되세요^^

목차

Ⅰ. 연보
Ⅱ. 외솔 최현배, 뜨겁고 맵고 꼿꼿한 삶.
1) 청소년 시절의 최현배 (우리글과의 인연)
2) 외솔의 애국 사상
3) 한글 운동
4) 교육자, 학자로서의 외솔
5) 외솔, 신념과 의지의 삶
Ⅲ.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청소년 시절의 최현배 (우리글과의 인연)
외솔 최현배는 1898년 10월 19일(음력)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났다. 외솔은 6살 때 서당에 다녔고, 1910년 3월 울산 병영의 일신 학교(日新學校)를 졸업했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닐 때, 처음 배우는 산수에 흥미를 느꼈으며 곧 산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외솔은 곧잘 선생님 대신 문제를 풀곤 했다.
4학년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산수 문제를 풀게 됐으나 그 문제만은 해답을 구할 수 없었다. '선생님 뒷날 공부를 더하여 반드시 이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이 산수 문제를 풀어 보이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외솔은 이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교육계에 몸바치게 된다.
일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굶주리고 헐벗은 고향의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신학문을 더 배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는 나라가 사라지던 1910년 이른 봄, 혼자 경성에 올라와 한성(漢城)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고등학교 전신)에 합격자 7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상동 예배당에서 열린 조선어 강습원에 나갔다. 이것이 외솔로 하여금 '한글'에 전념하게 한 계기를 만들었다.
「1학년 첫 여름방학에 고향 울산에 내려왔다. 옛 친구들(일신중학교 동창생들도 서당이 폐쇄되고 처음 선 신식학교라서 나이 든 학생들이라 각별히 정든 사이였다)이 반갑다며 바둑이나 두며 얘길 듣자고 하였으나 '놀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면서 거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여름방학이 끝나 서울에 올라와서 나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1910년 경술 8월 29일). 교명도 경성 고등보통학교로 바뀌고 교장도 일본인으로 됐다. 그러자 일요일마다 주시경 선생을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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