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구역 역사자료(피맛길)
- 최초 등록일
- 2013.06.28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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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한양의 역사
2.종로구 역사적 공간 현황
3.종로의 역사
4.공평구역의 역사
5.피맛골의 역사
6.소결
본문내용
1.한양의 역사
조선이 개국하면서 조선 태조는 풍수 도참설에 따라 1394년 조선의 수도를 이곳으로 정하였다. 이 당시 한성부의 영역은 현재의 종로구, 중구보다 좁은지역이다. 이어 조선 태종 때, 궁궐의 확장과 가로체계을 계획하였는데 한성부의 가로체계의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시전행라의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전행랑은 한성부의 동서 중심도로 종로일대와 경북공에서 종로에 이르는 현재의 세종로, 창덕궁에서 종로3가에 이르는 동화문로, 종각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남대문로 등의 간선도로의 양측에 건설되었으며, 행랑의 건설은 행랑이 간선도로의 양측에 지리 잡음으로 인해 간선가로의 노선과 폭원이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도시구조의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한성부 가로계획의 중심이 된 종로구는 도시의 중심지로서 정치, 사회, 경제적 사건을 겪으며 역사적 장소로 거듭났다.
2.종로구 역사적 공간 현황
1)육조거리
조선시대 한양의 육조거리는 1394년 한양천도에 따라 정궁인 경복궁이 영건되고, 의정부를 비롯한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등 주요 관아가 경복구의 정문인 광화문 앞 좌우에 건설되면서 형성되었다. 육조거리는 오늘날의 세종로의 전신이다.
2)승동교회
1904년 승동교회가 세워졌고 1919년2월20일 이 교회 지하에서는 당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3 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또 이 교회에서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가 창립되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 때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