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찰스 1세 1세 시기의 국왕과 의회의 갈등
Ⅲ. 혁명의 전개
Ⅳ. 올리버 크롬웰과 내전 이후의 영국 공화정
Ⅴ. 맺음말
본문내용
16~17세기 유럽은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로서 절대 왕정의 시기였다. 프랑스(France)의 루이 14세, 에스파냐(Espana)의 펠리페 2세, 잉글랜드(England)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등을 절대군주의 대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봉건사회에서의 분산된 권력을 하나로 모아 강력한 왕권을 형성하여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 왕정은 여전히 봉건적 잔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체제에서는 더 이상의 성장을 이룰 수 없었으며, 많은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하여 18, 19세기에 들어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절대 왕정시기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방식이 달랐었다는 것이다. 영국은 1265년 시몽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의 의회를 시작으로 의회 정치가 계속되었고, 국왕이 독재정치를 펼 때마다 의회가 이에 맞섬으로서 점진적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나간 것이었다. 고로 영국은 절대 왕정이 지속되기 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의회의 권한이 증가되었고, 결정적으로 찰스 1세시기에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의회는 왕에 대한 확실한 우위권을 점하게 되었다. 이는 곧 명예 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이어지고, 영국은 입헌 군주제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영국은 근대시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이 힘겨운 내전을 통해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동안 안정된 치세와 영토 확장을 통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룩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영국 의회발전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는 청교도 혁명, 찰스 1세 1세와 의회의 갈등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Ⅱ. 찰스 1세 1세 시기의 국왕과 의회의 갈등
스튜어트 왕조(House of Stuart)가 집권할 무렵 영국은 인구 증가로 인한 토지 자원과 식량 자원에 압력을 겪었으나, 스튜어트왕조는 이런 구조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 했고, 변화를 좌우할 능력도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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