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실태] 오염실태(청계천)

등록일 2002.12.28 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오염실태에대한 전반적 자료를 올림
A++받은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 되시면 좋을 듯

목차

서론

청계천의 역사
연도별 청계천 사진
현시점의 문제점
복원이전의 환경오염 문제
복원에 대한 긍정적 측면
-지하수 오염에 대하여
-환경오염에 대하여
복원의 필요성
청계천 복원으로 인한 효과
복원으로 인한 문제점
복원 후의 모습

결론

본문내용

우선 청계천을 오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제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27년간 이곳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선정하였습니다. 물론 광범히한 주제일 수 있지만 제나름대로 느끼고 조사한 바를 기술하려합니다.
또한 이곳이 요즘 이슈화 되어 제나름대로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하려합니다.
청계천의 시작단계 즉 건설 목적과 그로인한 사용 용도, 또한 건설로 인한 폐혜, 청계천의 복원을 하려는 시점에서 간과하면 안되는 점등을 조사하였습니다.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도성 내에 있었던 청계천은 주민 생활에 위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컸는데, 무엇보다 하천의 범람이 문제였다.
1407년 서울의 하천이 범람, 근본적인 조치를 위해 1411년 11월 개거도감(후에 개천도감으로 이름이 바뀜)을 설치하고 52,800명의 인원을 동원한 대규모 개천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의 공사는 일부 구간의 하상을 파내고 하폭을 넓히는 한편 돌과 나무로 제방을 쌓는 것이었다. 개천 역사가 종결된 후 개천도감은 그대로 행랑조성도감이 되었다.
이후 세종 때에는 도성의 개수와 방수, 방화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수성금화도감이 설치되었고 성종 때에는 개천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수해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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