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선교동산
- 최초 등록일
- 2013.06.12
- 최종 저작일
- 2011.06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묘역에는 총 23명이 안치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3기가 더 있어 총 26기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나와 있지 않는 3기는 비석에 T. B. T와 C. S. R이라는 약자가 새겨 있는 어린 아기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두 개의 무덤이 있다. 또 비석은 없으나 1937년 이전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지는 천주교 신부의 무덤도 있다. 형제로 묻힌 R. C Coit와 T. H. W. Coit가 한 비석에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선교사들의 전라남도 선교 전략과 광주지역의 영적 부흥을 위해서 노력한 것을 교재를 통해서 알아본바 미국인 선교사가 전라남도 땅에 최초로 들어선 방문은 1894년 이눌서 목사의 답사여행이다. 그리고 나주를 전라남도의 선교후보지로 지정하기 위하여 힘을 썼지만, 1896년 단발령에 반대하며 유생들이 의병을 이끌고 관찰사를 쫓아내고 관찰부 참사 안종수를 죽이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관찰사가 광주로 이전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의외로 완고한 유교적 풍토의 나주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광주에 선교부의 핵심을 두게 되었다. 그 때부터 광주는 근대화물결을 타고 획기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