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랑케의 역사학
1) 랑케이전의 역사학
2) 랑케의 객관적 역사관
3) 랑케의 객관적 역사인식 비판
Ⅲ. 랑케의 국가관과 피셔논쟁
1) 랑케의 개체인식과 국가관
2) 피셔논쟁의 쟁점
Ⅳ. 나오면서
본문내용
Ⅰ. 들어가면서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서술하는데 있어서 객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역사가들이 지켜야 할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역사가가 인류의 과거사를 공평하게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과거를 재현하는데 있어서 저마다 다른 관점과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사의 의미와 본질에 관한 많은 논쟁 중 하나는 ‘역사는 과연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것이 본래 어떠했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고 말한 랑케를 중심으로 객관주의 역사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랑케 이후에 일어난 피셔논쟁을 통해서 역사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 중 략 >
랑케사학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은 그것이 너무 고증적이며 정치사 중심이라는 것인데, 현대의 역사학계는 정치사 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서독 역사학계는 피셔논쟁을 효시로 하여 독일 역사상을 수정하려는 노력의 성과가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 역사학계는 이때까지 국가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의 진행에 작용하는 지속성 있는 배경이나 구조를 밝히려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역사학의 새로운 동향의 선두에 선 것이 곧 한스-울리히 벨러(H. -U. Wehler)이로, 그는 사회사에 관심을 두었다.
벨러는 독일의 역사주의가 추구한 개체원리나 이해적 방법이란 산업혁명에 따라 벌어진 급격한 사회변동을 파악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단정했다. 이때까지 독일 역사학은 역사의 개체성을 존중하는 역사주의 전통에 안주하여 국가의 정치적 발전과 그에 작용하는 역사적 인물만을 평가함으로써 역사에 작용하는 관계나 상황에 대해선 아무런 고려를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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