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
- 최초 등록일
- 2013.06.02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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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몰락 양반 홍종우
3. 프랑스 유학
4. 김옥균 암살
5. 애국자 홍종우의 입신양명
6. 일본의 침탈 앞에 위태로운 홍종우
7.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의 한국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화이었다. 주변국인 청과 일본은 물론 제국주의 열강들이 시시각각 한국을 넘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한국은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쟁탈과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으로 인해 나라 안의 상황에만 몰두할 뿐 청, 일본, 제국주의 열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의 상태와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 제국주의 열강은 증기선을 타고 온 바다를 누비며 식민지를 개척하고, 기차를 타고 대륙을 누볐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이제 막 서양문물을 접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격차는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격차를 좁혀간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끼게 되며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렀던 한국은 나라를 잃게 되었다.
<중 략>
1903년 친일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득세하여 홍종우는 제주도 목사로 좌천되었다. 급진개화파를 이끌었던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를 일본이나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은 개화파들이 그냥 둘리 없었기에 그는 해코지를 피한다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갔다. 그러나 제주도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결국 홍종우는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 제주도 목사 관직마저 사임하고 낙향하였다. 그는 때를 기다리고자 하였지만, 시시각각 침략해오는 일본의 모습에 결국 대한제국은 합병될 것이라 예상했다. 일본세력이 커질수록 점점 신변의 위협을 느낀 홍종우는 은둔을 택한 것이다. 그런 탓인지 1905년 이후 홍종우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는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면서 어렵게 살아갔다고 하지만 자세한 행적이나 기록이 없다.
홍종우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한지 3년 후인 1913년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 자료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2』, 인물과사상사, 2007.
권정노, 『누가 역적인가(홍종우와 김옥균 회고)』, 어문학사, 2007.
조재곤, 『홍종우 재조명 - 왜 기옥균을 살해하였는가』, 역사비평, 1992.
KBS 한국사전 제작팀, 『한국사傳 1』, 한겨례출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