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식민지시기에 태어났더라면
- 최초 등록일
- 2013.05.31
- 최종 저작일
- 2012.03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11년 2월 23일 나는 서울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하시던 구두 닦기를 형이 물려받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1920년 형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친하게 지내온 소진이 누나와 식을 올렸고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우리 가족은 매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형은 나를 경성 제국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구두 닦기와 몰래 신문배달까지 하면서 내가 공부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었다. 나 또한 형과 우리 가족을 위해 다른 것에 한눈 팔지 않고 공부에 몰두 했다. 그 결과 나는 꿈에 그리던 경성 제국대학에 합격 소식을 들었다.
<중 략>
나는 신간회라는 단체에 대해 형수님께 물어보자 원래 합법적 단체였던 신간회가 불법 집회가 되면서 형이 없어진 그날에 상당수의 신간회 고위급 인사들이 검거 되어 형이 말한 민중 운동이 무산되었다고 말씀해 주었다. 형도 분명 이때 같이 검거되어 심문하는 과정에 형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부재로 인해 우리 가족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나는 경제적 문제로 인해 마지막 남은 학교 1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형수님과 어머니가 끝까지 학교를 다니라며 말리셨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나는 몇 일을 형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중 략>
결국 태식이형은 일본군에 의해 죽게 되었다. 몇 달 후 후퇴 명령이 떨어졌고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조선군들은 곧바로 조선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길에는 온통 독립 만세 소리로 가득 찼고 나는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기도를 드리며 나와 형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나는 형수님들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단다.” 라고 말하며 일제 시기의 아픔에 대해 손자에게 말해주었다. 비록 수 십년이 지났지만 예전 형과 형수님이 살아있을 때의 행복한 순간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