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고대 왕권과 불교

등록일 2002.12.2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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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 고대의 국가불교 혹은 호국불교 전통. 이는 삼국 및 발해에 공통된 것. - 이는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국왕의 지위가 천강지응(天降地應)한 선민(選民)인 지배층의 일원에서 한단계 상승할 여건이 성숙되자, 佛法을 일으키고 수호하는 '국왕은 곧 부처(왕즉불)'이며, 국왕은 지배층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불법의 이념으로 통치한다는 정치 이념을 내세우기 위한 것. 이에 대해 지배층과 토착종교의 반발이 완강했던 것도 사실임. (국왕의 말단 측근 관료이었던 이차돈이 불법을 진흥하려던 법흥왕의 뜻을 헤아리고 사원 창건에 반대하며 지연시키던 조정 고관들이 보는 앞에서 하얀 피를 뿌리며 순교함. 불교 공인 이후 신라는 국왕이 주도하여 토착종교에서 天神이 내려와 地神과 결합한 장소로서 신성시하던 天鏡林`神遊林 등과 같은 신성구역에 절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함.)신라의 왕실이 구체적 사례임. -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 뒤에 그 왕호를 '무즉지매금왕(无卽知寐錦王)'에서 '성법흥대왕(聖法興大王)'으로 바꿈. 진흥왕은 전륜성왕을 자처하였고 그 아들은 동륜과 금륜으로 명명. 진흥왕 순수비는 전륜성왕의 통치영역을 확인하기 위한 것. 진평왕과 그 부인은 석가의 아버지 어머니 이름을 차용. 선덕여왕은 아쇼카 왕의 전생이름. 성골은 이러한 불교식 왕명시대의 산물일 것. 황룡사의 장륙존상(진흥왕대)은 인도의 전륜성왕인 아쇼카 왕이 조성하려다 이루지 못했던 철과 금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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