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후삼국과 고려의 건국
- 최초 등록일
- 2002.12.22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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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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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지배층 내부의 갈등
1) 진골귀족의 분화
2) 진골귀족 간의 갈등
3) 6두품 성장과 불만
2. 대토지소유의 확대와 자영농민층의 몰락
1) 대토지 소유의 확대
2) 자영농민층의 몰락
3. 호족층의 성장
1) 호족의 유형
2) 후삼국의 성립
본문내용
1. 지배층 내부의 갈등
1) 진골귀족의 분화
* 골품제
- 신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왕족 및 주변의 족장세력과 국가건설에 공이 있었던 왕경인을 대상으로 편성한 신분제
- 골족과 두품족으로 구분
- 진골 귀족은 6두품의 승급을 제한, 중앙 관부의 장관직과 주요 외관직 무관직을 독점
- 골품에 따라 남녀의 입을 수 있는 옷감의 종류, 색깔에 제한. 수레를 꾸미는 장식에도 골품에 의하여 차등. 집의 크기도 제한, 마굿간의 크기도 제한
- 두품자들의 진급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일부 관등내에 다시 다수의 등급을 설정--- 중위제. 6두품을 위하여 사중아찬까지, 오두품은 구중대나마까지, 그리고 해당인원이 가장 많았을 7중나마까지 중위를 설정. 신라하대(800년경)에 가면 사찬(8등급)에 삼중사찬이 설정
- 삼국통일 과정과 그 직후에는 토지 민인 등 많은 전리품이 있어서 진골귀족 간에 갈등이 있다해도 국왕이 이를 조정할 수 있음.
- 통일 이후 진골귀족의 증가와 전리품의 축소 -> 한정된 이권이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에게 집중. 진골내부의 권력투쟁이 격렬해짐.
- 결국 진골은 1골(현왕의 직계자손 및 현왕의 남자형제와 그 자손. 종래 진골귀족의 특권을 향유하는 층)과 2골(관료군: 득난)으로 분화.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