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사] 장영실과 우리나라의 과학사

등록일 2002.12.20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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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영실이란 이름은 전통사회의 역사사료에서는 그 이름을 찾아 보기 어렵다. 그가 세종 때의 뛰어난 기술자 한 사람이었던 것은 겨우 알 수 있으되, 그렇게나 유명한 인물로는 여겨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개화기의 우리 선조들은 별로 장영실이란 이름에 주목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영실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 보면, 세종대의 과학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던 것을 누구라도 금방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도 발전했던 세종대의 과학과 기술은 1442년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장영실은 그해 4월 장 80대를 맞고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고, 그와 함께 과학기술의 황금시대는 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형벌을 받고 역사 기록에서 아주 사라진 것은 그가 만들었다는 임금의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유였다. 그때 세종은 그 가마를 탄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장영실이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았던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하튼 우리는 그의 행적에 대해 그후의 『조선왕조실록』 어느 곳에서도 더 찾아볼 수가 없다. 장영실은 역사에서 추방당하여 20세기까지 깊은 잠 속에 빠졌던 것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장영실이란 이름은 한국인에게 그리 잘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다. 아니, 해방 후 얼마 동안까지도 그의 이름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던 장영실의 이름이 지금은 한국인 모두가 알고 또 사랑하는 대중적 이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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